문득, 플롯이란 잠깐의 순간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Gymnopedie>라는 단편을 쓴 적이 있다. 1년도 넘은 일이다. 에릭 사티의 곡에 적잖게 감명을 받고서 그 느낌을 드러내려는 단편이었는데, 며칠 전에 손을 봐보기도 했다.
그 곡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플롯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오종우 선생님이 '침묵을 얘기하는 소리'라 표현한 Gymnopedie의 공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다. 나는 사티의 Gymnopedie를 '흘러가는 시간-풍경 안에서 잠깐 일시정지한 시간 혹은 공기'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런 시간 혹은 공기를 표현하려 한 것이었다.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는 그러한 공기를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소설은 Gymnopedie 특유의 심장 소리를 재현하지 못했다. 괜히 라이트노벨적인 분위기까지 표현하려다가 망한 건지도 모른다. 내 단편은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열화판, 그것도 지독하게 뒤떨어지는 열화판이었다. 플롯이 사라진 소설에서 캐릭터의 성격은 아래로 가라앉기보단 오히려 공중에 붕붕 떠다닌 것이었다.
또다른 단편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내가 <Gymnopedie>에서 표현하고팠던 그 공기를 어렴풋하게나마 잡아낸 것 같다. 이 단편은 <Gymnopedie>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플롯을 채용하고 있고 판타지적인 배경을 동원했다. 문장은 훨씬 더 가볍게 쓰고 있다! 그런데도 장면 어디에선가는 에릭 사티의 선율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니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플롯을 채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다. 플롯은 캐릭터의 동선을 그려낸다. 이 동선이 작품 안에서 흐르는 시간이다. 캐릭터의 동작에 따라 작품 안의 시간은 도약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이 멈추는 순간에 나는 묘사를 짚어넣고 있었다. 이때 작품의 시간과는 또다른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에릭 사티의 곡은 플롯을 삭제함으로써 표현된 게 아니었다. 되레 플롯 속에서 그 곡은 표현될 수 있었다. 꽤 흥미로운 일이지 않는가.
사티의 공기뿐만이 아니다. 글쓴이가 표현하려는 공기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플롯 안에서만 구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안나 카레니나가 철도에 뛰어드는 장면이 플롯 없이 표현될 수 있었을까? <황금 물고기>의 라일라가 납치되는 소설 첫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 이것들도 플롯의 흐름 덕택에 잠시 허락된 순간이지 않을까? 말하자면, '잠깐 멈춘 순간'은 계속 흐르는 시간 안에서만―?
그렇다면 글쓴이에게 플롯은 순간을 위한 동력일 뿐인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한순간 혹은 멈춘 공기이고, 그 순간을 가장 적합하게 허락해줄 플롯을 채용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 경우에, 내가 글에서 표현하려던 것은 항상 한순간 혹은 공기였던 듯하다. 그렇기에 나는 카프카의 단편들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 것이었다. <어느 단식 광대>나 <싸구려 관람석에서>를 보라. 카프카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그 순간들을 집어내는지!
나 같은 생각에 휩싸인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예컨대 다자이 오사무는 <만년(晩年)>에 실린 단편 <잎>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은 말했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겐 그저 분명하지 않을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려고 백 페이지의 분위기를 조성하거든." 나는 조심조심 심사숙고하면서 대답했다. "정말이지 말은 짧을수록 좋아. 그것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그래, 좋다! 한순간의 공기를 전달하기 위해 백 페이지를 소비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해보자. 더구나 그 공기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페이지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해보자. 우리에게 한 가지 의문이 찾아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소설은 단지 양손으로 길게 잡아당긴 시(詩)인가, 라고―?
가령, 카프카의 다음 단편(혹은 엽편)은 소설인가 시인가?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마에서 일위가 되고자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 지방의 일등 기수로서 인정받는 영예는 오케스트라가 시작할 때 다음날 아침에 후회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준다.
교활하고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경쟁자들의 질투심이 사람들로 좁게 빙 둘러싸여 있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 사이를 뚫고 수평선 주변에 작게 몇 트랙을 앞질러 달리고 있는 기수들 사이에 난 텅 빈 평지를 향하여 달려간다.
많은 우리 친구들은 서둘러 이익금을 찾으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창구로부터 어깨 너머로 우리에게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가장 좋은 친구들은 우리들 말에 결코 건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내기에 잃고서 우리들을 원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말이 일위를 해서 그들이 돈을 하나도 벌지 못하고 우리가 옆을 지나칠 때면, 그들은 몸을 돌려 오히려 관람석을 죽 쳐다본다.
안장에 찰싹 붙은 채 뒤로 쳐진 경쟁자들은 그가 당한 불행을,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떻든 부과된 과실을 알아보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마치 앞의 경기는 어린아이 장난이었고, 이번에 시작되는 경기야말로 진정한 경기인 양 활기찬 모습을 보인다.
많은 부인들에게 우승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그가 뽐내면서도 계속되는 악수 세례, 축하, 인사와 그리고 멀리 인사를 보내는 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패자들은 입을 다문 채 대부분 흥흥대고 있는 말들의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거리고 있다.
마침내 찌푸린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치 중력처럼 마지막 한 문장은 다른 모든 문장을 끌어당기고 있다. 모든 서술이 한순간, 말등을 쓰다듬는 기수에게 빗줄기가 쏟아지는 장면에로 수렴된다. 카프카는 저 한 장면을 위해 문장들을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하나의 장면이 시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이 단편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소설에서 카프카는 이처럼 글을 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카프카가 등장시킨 모든 캐릭터들에 있다. 더 정확하게는 주인공들에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카프카의 주인공들에겐 대개 이름이 없다. 이름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카프카가 표현하는 것은 진실로 순간들일 뿐이다.
카프카에겐 플롯에 해당할 만한 뼈대랄 게 없다. 만약 우리가 창작 수업에서 곧잘 그러듯이 카프카의 소설에서 플롯들을 뽑아내 정리해본다고 해보자. 우리는 카프카 소설의 매력이라할 만한 것들이 몽땅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카프카 소설 속에서 캐릭터와 플롯은 그 글의 공기에 용해되어 있다. 캐릭터 비슷한 것과 플롯 비슷한 것은 오직 공기를 표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이다. 우리는 카프카를 읽을 때 어떤 캐릭터에게 빠져들거나 플롯에 흥분하는 게 아니라 다만 그 공기에 질식되어 황홀해 하지 않았나? 바로 이 공기, 바로 이 대기가 카프카이지 않나?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사무엘 베케트가 <고독을 기다리며>에서 서사를 부정했다면 카프카는 서사를 문장들 사이에 녹여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그렇다면. 이것이 시와 다를 바는 무엇일까. 시 역시 순간의 예술이 아닌가. 소설은 무엇인가. '카타르시스,' 아리스톨레스는 고대의 소설이라 할 비극의 본질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러나 그 묘한 쾌감은 소설적이라기보단 시적인 것이다. 카프카의 단편을 읽거나 황지우의 시를 읽을 때 우리가 빨아들이는 대기, 그 공기가 우리를 정화시킨다. 이 공기가 아니라면 뭐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단 말일까? 뭐라고? 자신보다 훌륭한 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을 보고 느끼는 쾌감―이라고? 그것이 소설이라고? 그것도 소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소설이라면 너무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카타르시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조금 더 보충되어야만 한다.
한순간의 황홀경과 한순간의 들숨, 이는 니체가 표현한 대로 아폴론이 감싸 안은 풍경이다. 시(詩)이다. 만약 소설만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순간의 공기와는 다르지 않을까.
아직 그게 무엇이라고 훌륭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다. 다만 나는 내가 만화를 읽을 때면 곧잘 느끼는 그 두근거림을 기억하고 있다. 혹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외치고 '아! 그렇게 되었는가'라고 탄식한다. 대체 무엇이 이 '앞으로!'를 외치게 만들까.
똑똑한 우리는 물론 아주 간편하게 답할 수도 있다. '플롯'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대답은 우리 스스로 도출한 것이 아닌 듯하다. '캐릭터'라는 대답도 형편은 마찬가지이다. 다른 낱말과 다른 개념으로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뭘까. 나는 아직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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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말을 생각난 김에 덧붙여 둔다. 그냥 생각이 흐르는 대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중심으로:
나는 니체의 생각을 빌려서 시적 충동을 아폴론적 풍경이라 정의했다. 그 풍경은 순간적이다. 우리가 문학에서 '순간'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그건 과학에서 말할 때의 어떤 지점 x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의 순간들은 시간이 잘게 부서진 요소들이다. 그 요소들을 깡그리 모으면 시간이 재현된다는 것인데, 이때 흐르는 시간과 순간 사이에는 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문학에서 '순간'은 흐르는 시간과는 아주 다르다. 오이디푸스가 목 메단 부인의 몸뚱아리를 보고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그레고리 잠자가 피아노 치는 여동생에게 다가가는 '순간,' 이런 순간들은 결코 시간의 부분이 아니라 시간의 돌출, 아니면 차라리 또 다른 시간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황지우 시인이 표현한 대로 "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 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과 같은 시간이다.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에서)
이 돌출한 '정지'는 온갖 일상적 시간의 흐름을 마비시키고 있다. 시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정지는 신성할 수도, 낭만적일 수도, 슬플 수도, 혹은 피곤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성격을 지녔던 이 순간은 일상적 흐름을 부정하고,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순간에 대한 충동이 시적 충동이듯이, 역시 형이상학적 충동이라고―?
니체가 아폴론적 풍경을,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을,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위와 같은 발상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공통 분모를 지닌다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삶의 부정'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흐르는 삶을 부정하고 한순간의 공기를 세계의 본질로 취급하는 태도 말이다. 이 태도 아래서 한순간의 공기는 본질이자 필연적인 무언가로 설정되고, 나머지 삶의 흐름은 잡다하고 우연적인 것들로 전락한다.
이러한 니체의 비판을 하이데거는 <니체>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니체가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자신의 생 주위를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과제를 미리 주시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자신의 과제가 니체에게는 본래적인 현실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와 그에게 속하는 사람들, 또 그가 가까이하려고 하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모든 관계들은 그러한 현실 안에 의미를 갖는다.”
이 얼마나 큰 오판이냐! 그 반대이다. 니체는 분명히 '영원회귀'라 표현되는 얼개를 바라보고는 있다. 그런데 니체가 그 원환을 보존하려는 까닭은, 자신의 시야에 잡힌 그 시적인 순간들을 잡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려 그 시야에서 벗어난 많은 것들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니체는 뭐라고 외치나?
‘모든 순간은 되돌아온다! 그대가 경험한 이 순간 하나하나, 그대가 느낀 온갖 미세한 감정들, 그대의 모든 회환과 추억――모든 것들을 너는 똑같이 반복할 것이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이 외침은 무얼 뜻하는가? 당신이 지금껏 겪어온 모든 것을 다시 그리고 끝없이 반복해서 경험하라는 저 명령은 어떤 의도를 함축하는가? '놓치지 말라! 그것들이 너에게서 도망치도록 허락하지 마라!' 이것 아닐까? 하이데거가 해설한 바와 다르게 니체는 우연한 순간들을 사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환은 무엇이겠는가. 반복되는 삶은 무엇인가. 하이데거가 말했다시피 이미 주어진 과제일까? 자기 시야에 들어온 것들을 반복하기―일까? 그러한 의미에서 삶의 완성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망각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 말고도 우리가 그저 흘려보낸 많은 것들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왜 정오를 울부짖고는 마지막엔 자정을 축복하는가? 왜 자정 역시 하나의 정오라고 말하는가? 왜냐하면 삶에는 기억된순간 못지않게 망각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들이 시간의 흐름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 당신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저 순간을 망각할 수도, 저 순간을 기억하고 이 순간을 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가볍게 여기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정말로 삶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내가 겪어온 모든 것을 결코 왜곡하지 않고 싶다면, 당신은 다시 한번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내가 기억한 저 순간들이 사실 기만일 수도 있다는 회의. 내가 중시하는 가치와는 전혀 다른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모든 회의와 기대를 안은 채로 다시 삶에 뛰어들 수 있다는 용기. 기꺼이 잊어버리고, 기꺼이 기억해주겠다는 넉넉함.――차라투스트라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왜 니체가 영원회귀를 아직 싹도 나지 않은 너른 벌판이 아니라 수확을 맞이한 붉그스름한 포도알이라고 표현했는지, 도대체 하이데거는 이해했는가?
영원회귀는 하나의 징표다! 삶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세계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징표이다. 그것은 사실 태도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러하다! 나는 실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나는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열망하기 때문이다. 삶이여, 반복되라! 무한히! 영원히!" 아하,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선언이냐. 괴테가 내뱉은 저 보잘 것 없는 외침, "순간이여 멈춰라! 너 아름답구나!"에 비해, 니체의 선언은 얼마나 비범한가.
영원회귀야말로 가장 무거운 사상이고 가장 무거운 시간-흐름이다. 그것은 모든 순간을 껴안으려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껴안고 싶어하는 자만이 영원회귀의 사상에 귀를 기울인다. 영원회귀는 시간의 부정이 아니라 시간의 긍정이다.
영원회귀를 시간의 부정으로 취급하는 자는 오직 저 한순간의 공기에 붙들린 자뿐이다. 그러한 자는 깜짝 놀라며 외친다. '뭐라고? 내가 지금 겪은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될 무언가라고? 지금 단 한순간에 빛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지겹고 지독하고 잔인하게 반복될 무언가라고? 이 순간에 대한 모욕이지 않는가! 그처럼 반복되는 삶에 대체 무슨 감동이 있단 말인가? 이 순간은 결코 반복되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 아닌가!'
이 난쟁이의 투덜거림에 차라투스트라가 답한다. "너, 중력의 악령이여!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 절름발이야, 내가 너를 이 '높은 곳까지 업고 오지' 않았는가!" 저 시적인 순간들에 도달한 것은 누구인가? 이 황홀한 순간까지 오는 데 무엇이 필요했는가? 이 순간까지 도달한 것은 시인 본인일 뿐이다. 이 순간은 단순히 찾아온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올라선 정상이다.
난쟁이가 투덜거리는 대로 시간이 영원뿐이고, 회귀뿐이라면, 대체 이 순간, 뒤로 난 영원과 앞으로 난 영원을 당신이응시하는 이 순간은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순간이 만물을 끌어당기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자기 자신이 만물을 어떻게 끌어들이냐에 따라서 만물은 회귀하고 있지 않는가? 모든 사물에 대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영원회귀를 시간의 부정으로 볼 까닭이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시간을 오를 뿐이다. 시적인 순간을 맛보았는지? 형이상학적인 감동에 휩싸였는지? 그렇다면 그러한 순간과 감동에 다시 한번 오르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흥분에 휩싸이지 않을까? 내가 저 순간과 감동에 붙들린 나머지 그냥 흘려보낸 많은 것들을 나는 이번에 다시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러한 시간에 대한 충동――순간에 대한 충동에 대비해서 쓴 말이다――, 이것이 소설일 수 있을까? 삶의 흐름을 재현해내기, 그 흐름에 전혀 새로운 리듬을 부여하기, 기존의 순간들을 깨부시고 다른 순간들을 부상시키기, 이것은 충분히 소설일 수가 있다. 체호프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서 보여준 것도,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준 것도 사실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후자는 막장에 가서 분위기를 좀 깨긴 하지만.
근데 이렇게 보면 또 카프카의 글이 소설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솟아오른다. 평범한 일상의 흐름을 깨고 다른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 이건 때때로 카프카의 글에서 등장하는 바이다. 사실 카프카도 '얼음을 깨부시는 도끼'로 소설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남아 있다: 좋다. 시간을 긍정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그 긍정은 또 다른 순간들을 등장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 아니냐? 내가 예전에 매혹된 순간과는 전혀 다른 순간을 그려내는 것, 그것이 흐름을 긍정하는 태도라고 했겠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그러한 일을 벌인다. 모든 시인이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요컨대 소설이 뭐냐는 질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