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손가락의 환지통이 느껴졌다. 수면제를 다시 삼켰다.
긴 밤 동안 끝없는 터널을 지난 느낌이었다. 꿈속에서 교성을 지르는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히 야한 꿈이었는데. 나는 손목시계를 흘끔 보고, 마저 섹스를 하기 위해 몸을 이완시켰다. 그러나 옅은 잠 중에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어린 내가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이었다. 동네 전체에 카레 냄새가 가득했다. 집으로 달리는 어린 나, 교복을 입은 나, 전투복을 입은 나…
결국 열시 반이 되어서야 이부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빌어먹을, 베게가 축축했다. 여느 때와 별 다를 것 없는 게으른 아침이었다. 이젠 이 게으름이 마치 천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밍기적밍기적 컴퓨터를 켜고 컵라면을 끓일 물을 올리는 것은 내가 아침마다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자유였다.
막상 병영 밖에서 누릴 수 있는 수만 가지 자유가 피부로 다가오자 나는 스스로의 그릇에 맞게 세상을 골방으로 축소시켰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는 것은 무엇인가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에 배인 습관 탓이었다. 어쩐지 이제는 물건의 주인의 상하가 전도된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외계인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 그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면, 그들은 나를 전자파에 조종되는 모르모트 정도로 여길 것이다.
잘린 옛 중지(中指) 자리에 아직 뿌리가 남아 담배를 피우는데 무리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군대에서 소형 발전기와 정수차를 연결하다가 육중한 쇳덩어리에 중지가 짓이겨졌다. 첫 돌부터 붓과 물감을 잡았던 그 놈의 중지가 절단이 났다. 치료는 받았지만 보상은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생산적인 일을 했던 때는 이년 전, 일월 중순이었다. 의가사제대를 하고 죽어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술구름이 가득찬 대낮의 자각몽에 홀려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연민 가득한 눈으로 보던 가족들이 점차 나보고 정신이 썩었느니 폭언을 해대는 것도 한 몫 했지만.) 훈제닭 장사를 해봐야지, 오랜 설득 끝에 아버지에게 목돈을 타서 트럭을 개조했었다. 계란을 머리에 이고 장터에 가며 비단 옷을 꿈꾸던, 구전설화의 처녀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 말마따나 손가락도 잃어봤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요.”
그러나 대한민국 최전방 외진 곳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내게도, 하루 열 시간동안 스며드는 겨울 냉기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훈제 기계가 너무 큰 탓에 전기 히터를 운용하기 힘들어, 핫팩을 얼굴에 대며 샅에 대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 사회적으로 검증 받은 가공육 회사의 식재료를 공급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리라 예상했었지만, 날마다 손에 들어오는 수입 편차가 심해 가슴 앓는 날이 많았다. 덧붙이자면 아무리 잘 팔아도 하루에 오만 원을 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때까지만 해도 대학 등록금을 내지 않고 수입을 내고 있으니 효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일을 시작한지 딱 한 달만에 터졌다. 대여했던 훈제 기계에서 난데없이 불이 난 것이었다. 급한 대로 주변에 보이는 커다란 눈뭉치를 안아와 문대는 것으로 진화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쇳덩어리 탄내가 코를 찔렀다. 업체 측에 반납 정비를 문의했더니 과열 및 누유로 인한 고장이라는 답변이 왔다.
“누유라니요…? 이거 애초에 불량 아닙니까. 쓴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말입니다. 주유하실 때 약간 기름을 쏟으셨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금속 표면에 스파크가 튀거든요. 그 스파크가 불씨가 돼서, 예, 예, 아. 시동 시에 축전지가 원인입니다. 아니요, 저번에도 이런 경우가 있긴 했지요. 예, 죄송합니다. 미처 주의를 못 드렸네요. 예. 한 160만원은 됩니다.”
“160만원이라고요. 160만…”
핸드폰에 대고 눈 내리는 거리에서 같은 말만 되물었다. 육군 카고 트럭은 20년을 써도 멀쩡하더니만, 빌어먹을… 담배를 찾던 손으로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병신이 된 손가락이 뭔가 실수를 한 게다. 세상에 구름처럼 떠다니던 불운이 갑자기 새똥처럼 머리를 갈긴 날이었다.
결국 일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께 파산 신청을 하고 말았다. 시작 때부터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아버지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160만원이라고.”
하고 되물으셨고, 나는, 예… 백육십… 만원이요. 하고 얼빠진 억양으로 답했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부자간의 정적 속에 나는 아버지 심중에서 엎치락뒷치락하는 터질 듯한 호흡과 표정을 읽었다. 나는 눈물이 치밀고 있는 걸 감추기 위해 억지로 밝은 척을 했다. 그게 지나쳐서 방긋방긋 웃어버린 것이 화근이었지만.
“왜 웃고 있는 거냐?”
“아녜요...”
“정신 빠진 놈.”
그 묘한 공존 상태 속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은근슬쩍 기어 올라와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긴장 탓에 정신이 나간 것이 이유였을까? 마치 입과 머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애초에 병신 주제에 뭘 해보겠다고… 하고 중얼댄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 뒤의 할아버지께서 이런 후레자식! 하고 소리쳤다. 등줄기에 전류가 지나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게 할 말이야 이놈아!”
“말실수였…”
할아버지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것과 누나가 달려들어 나를 뒤로 밀쳐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얘가 뭐 고장 내고 싶어서 고장 낸 건 아니잖아요. 신기하게도 누나는 내가 방금 전까지 입 안에서 웅얼대던 말을 대신해주었다. 머리통마저 병신 같은 놈! 에이, 뭐, 그거야… 뭐. 누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아버지가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했다.
“때려치우고 공무원 준비나 해라.”
“……”
“트럭은 도로 팔 거다.”
“예.”
며칠 뒤 버려진 구명튜브처럼 쓸려 내려간 곳은 근교농업을 하는 외가댁이었다. 외할머니 한 분만 사시는데다가 그마저도 가까운 외삼촌댁에서 머무시는 날이 많은 까닭에 자취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따금 농사일을 도와드린다고 나가면, 외할머니는 한사코 만류하며 학생은 공부나 하라고 하셨다. 나는 화장실 옆 으슥한 방에 공부할 서적들과 노트북 컴퓨터를 갖다놓고 잠도 거기서 잤다. 군식구로 살아가는 최소한의 염치였다.
“왜 여기서 자니.”
“…보일러 옆이라 따뜻해서요.”
막상 그 골방에 책상을 펴고 앉아보니 공부방이라기 보단 무슨 은둔기지 같았다. 통풍과 채광이 되지 않는 방 안에 주먹만 한 전구 하나가 힘겹게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근대 유럽의 사실주의 유화(油畵)가 떠오르는 애처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야릇한 감상에 젖어 도어즈의 옛 노래를 염문 외듯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이상하네, 네가 이방인일 때, 네가 외로울 때, 뒤틀려 보이지. 네가 불청객일 때,… 짐 모리슨처럼, 나는 패배감을 소스삼아 자위를 했다. 울컥, 쏟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공무원 시험 교재가 열두 페이지 넘어갔는데 반해 컴퓨터의 HDD는 터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조리 무상으로 제공하는 무선랜 덕분에, 나는 집 밖으로 도통 나가질 않았다. 시간과 생활이 거세된 은둔기지에서 담배를 펴고 포르노를 보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나이 지긋하신 외할머니 관점에선 컴퓨터를 이용해 공부하는 것과 노는 것을 잘 구분할 수 없었기에, 외할머니는 우리 손자 공부 열심히 한다, 며 기뻐하셨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골방에 와서 공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게 9급 공무원 시험 교재란 패배의 상징과도 같았다. 일주일 만에 이 책을 옷가지들 사이, 특히 신경 써서 전투복 사이에 두었다. 쳐다보기도 싫은 거, 한데 모아놔야지- 하는 비뚤어진 의도였다. 그렇게 놓고 보니, ‘특급 전사’와 ‘9급 공무원’이란 두 단어가 맞닿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특급전사 9급 공무원. 무슨 말장난 같았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다 분을 못 이겨 캔버스를 부숴댄 것이 열 차례,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90년대 어느 히트곡 가사처럼 나는 술 먹은 달팽이가 되어 곧게 걸을 수 없었다. 전봇대에서 가로수로, 가로수에서 우체통으로 장애물을 건너듯 걸어야했다. 밤이었으면 취기도 나름 낭만이 있는 건데. 한 여름의 오후 여섯시라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다. 터트려지지 못해 갈피 못 잡던 울음기가 둑에 구멍 내듯 욱욱거리며 튀어나왔다.
거리엔 가랑비에 젖은 대출광고와, 동계 올림픽 유치를 선전하는 전단지와, 오빠, 나 진짜로 젖어있어, 하는 음란전화 광고가 남우세스럽게 흩뿌려져있었다. 내 얼굴이 더 젖어있다 이년아. 슬쩍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씹고 있던 껌을 퉤 하고 뱉었다. 오빠, 나 진짜로 젖… 이 되어서 미묘하게 음란함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과연 얼마나 받았을까. 광고에 인쇄된 이름 모를 소녀의 미소가 문득 청승맞아보였다. 목줄 차인 돼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나는 벌써 스물여덟 살이었다.
먼 옛날 나사렛의 어떤 사내는, 그의 제자들 앞에서 희망은 사람을 부끄럽지 않게 한다고 했다. 그는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성령으로 강림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 소개된 어떤 사내는,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냥 가슴 아플 뿐인걸. 하고 노래 불렀다. 그는 골방에서 쓸쓸히 영양실조로 죽은 후, 홍대 거리의 신으로 추대되었다. 그 두 사내 사이의 이천년이란 간극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져, 감히 희망에서 부끄러움으로의 변천사를 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예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며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아티스트는 창피함과 패배감을 이기지 못해 기타 치다 혼자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새로운 신앙이 필요했다.
나는 달팽이처럼 골방까지 기어온 지 10분도 안 돼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종이팩 소주를 또 마셨는데, 마지막 한 방울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내 의식은 영성의 기쁨을 향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니터 안에 내 사랑이 강림해있었다. 어떤 사내의 품에서 나니오 스루! 를 새침하게 연발하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 기도하듯 무릎 꿇고 자고 있던 나의 싸구려 몸뚱이는, 무아지경의 세 시간 동안, 야동을 보고 있었구나. 고작 이 따위 거… 창녀 가랑이를 살 용기도 없냐…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또 하나의 세계이다, 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내 정수리는 콘크리트를 들이받고 세상 밖으로 날아오를 정도로 단단하진 못했나보다. 그 뒤로도 몸에 알코올이 조금이라도 녹아들면 뭔가 울컥하곤 했다. 그 때마다 그 울컥한 느낌이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며 내가 이제 어른이 됐구나. 하고 넘겨짚곤 했다. 그러나 술이 깨면 또 다시 컴퓨터 앞이었다. 이 반복적인 깨달음 끝에, 나는 결국 찝찔한 눈물 맛을 즐길 수 있는 진짜 패배자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취해 비틀거리던 어느 날, 나는 친구네 학교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페가수스를 보았다. 수많은 안경잡이들 사이에서 그 쇳덩어리 동상은 유난히 역동적으로 보였다. 기수는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올곧은 시선으로 구름을 보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강철 심장’이란 단어의 매력, 그리고 조형물로써의 완벽미 때문에 나는 멍하니 놈들을 바라보았다.
“너 뭐 보냐?”
“……”
“아, 페가수스. 저거 우리 마스코트다.”
숨을 쉴 때마다 내 코에서 알코올 냄새가 얼큰하게 뿜어져 나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경외심을 담아 눈, 코, 입, 앞다리, 뒷다리, 활짝 핀 날개를 바라보았다. 너, 무결점이구나. 나랑은 다르게… 그 때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페가수스는 수놈이 아닌가?
“저 놈은 자지가 없을 것 같은데.”
“뭐라고?”
“아마 안 만들어놨을 거야.”
“이 새끼, 취했네.”
당시 내게 있어선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었다. 페가수스와 나의 공통점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영웅을 등에 태우고 키메라를 퇴치하던 전설의 명마가, 저것이, 나처럼 신체 하나가 결손 되어 있다면, 내게 뭔가 용기가 솟아나진 않을까, 취한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친구놈이 피식거리더니 동상 뒤로 돌아가 놈의 가랑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새끼… 고자네.”
“자지 없는 말은 뭐하고 사냐?”
“경마. 경주마.”
“왜 거세를 해?”
“경주 할 땐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데, 발정이 나면 같이 뛰는 암말 궁둥이를 쫒아 이리저리 산만하게 뛰거든. 그러면 다른 말의 진로까지 막아버린다.”
“말이 섹스를 못하는데 1등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냐? 좋은 비료라도 처먹나?”
“아니.”
“그럼 왜 뛰어?”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슨 힘에 이끌리듯 근처 경마장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건물에 불을 지르겠다며 울부짖는 노인, 사채업자, 오만원 짜리를 부채마냥 들고 다니는 아저씨 등 온갖 인간군상이 보였다. 나는 손가락을 잘라 얻은 공짜표를 들고 멍하니 입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객님, 입장권은 만 천원입니다. 이 개새끼들아, 내가 여기에 2억을 때려부었는데 고작 만 원짜리 입장권이 뭐 어째? 고객님, 진정하십시오. 건물 로비에서 뒹구는 사람들, 후드를 쓴 문신투성이 젊은이, 창녀 같은 아주머니… 나는 그들 한 가운데 있었다. 대통령도 검사도 원칙 안 지키는데 내가 왜 좆같은 경마장의 원칙을 지켜? 대통령도 검사도 여기 들어오실 땐 입장권 삽니다, 고객님.
야, 이,
개새끼야!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모른 체 하고 객장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거세마들이 여기저기 달리고 있었다. 4번 경주였다.
옆자리엔 마귀할멈 같은 사람이 자판기 커피를 페트병에 담아 쉬지 않고 마시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데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따라서 웃지 못했다.
신입 기수가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고인이 될 지도 모르는 기수의 모가지는 아랑곳없이 자기 구매표를 땅에 집어던졌다. 현세의 마굴(魔窟)이 따로 없구나.
기왕지사 입장권을 사고 들어왔으니 뭔가를 하긴 해야겠다는 기분이었다. 나는 옆자리 아저씨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승식이 하도 복잡해서 당장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경마는 1억을 잃어봐야 그 때부터 시작인 게임이야.”
라는 말이었다.
“가장 잘 뛰는 거세마가 뭡니까?”
“거세마?”
“네.”
“창천만리(蒼天萬里). 10경주, 대통령배 경주에 나온다.”
나는 만원을 베팅했다. 스크린을 보니, 놈은 갈기털을 휘날리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12연승이라고… 경마사에 길이 남을 대업적이란다. 본인, 아니 본마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겠지만… 창천만리가 뛰고, 또 뛰어서 조교사는 대단한 부를 거머쥐었겠지. 그러나 저 놈한텐 뭐가 돌아갔을까? 저 놈은 말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인 섹스를 못하잖아. 이상하게 놈을 보고 있자니 담배가 계속 입에 당겼다.
출발선에서 창천만리는 포효하고 있었다. 놈은 화약 때리는 소리가 나자 탄환처럼 튀어나갔다. 놈의 탄력 있는 몸에 기수가 쉬지 않고 채찍질을 했다. 가죽 벨트 같은 것을 살에 후려치니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혈통에 흐르는 질주의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완전히 굴종하여 노예가 된 건지, 창천만리는 그저 우직하게 앞으로 뛰었다.
스크린을 자세히 보니 놈들의 얼굴에 안대가 보였다. 눈을 가리고 뛰고 있단 말이야? 옆자리 아저씨가 설명해주길, 다른 말과 같은 라인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아니, 그놈의 진로(進路) 때문에 자지를 잘라놓고, 한술 더 떠서 눈뜬장님으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이봐요, 학생.
저게 공정한 승부야.
놈은, 창천만리는 매번 무서웠을 것이다. 뜬금없이 자지를 잘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등에 올라타서는, 자기 눈을 가리고 뛰라 한다. 그 끝에 있는 것이 절벽일지, 막다른 골목일지, 놈이 알 턱이 없다.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왜 맞고 있는지, 왜 뛰어야 하는지, 놈들은 알 턱이 없다.
창천만리는 초반에 빠르게 뛰지 못했다. 앞서가는 말들이 일으킨 흙먼지 탓에 갈색 몸뚱아리가 더 갈색이 되어 갔다. 손가락에서 환지통이 느껴졌다. 없는 손가락에게서 통각만이 불에 타듯 전해진다. 나는 목이 메여 소리쳤다, 뛰어, 뛰어! 기왕이면 이기라고! 놈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쿵쿵쾅, 쿵쿵쾅, 채찍은 더 매서워졌다. 짜악, 하고 후려쳐댔다.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 쳐라! 쳐라! 태식아, 갈겨라!
- 텐(10), 텐! 창천만리, 이 씨발놈아!
말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고 한다. 사람들의 하나로 합쳐진 함성이 놈의 귀에 흘러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눈도, 감촉도, 흙먼지로 막힌 코도, 신체 하나하나가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었지만, 다만 귀는 아무런 제제 없이 활짝 열려있었다. 총기 있게 토끼귀 마냥 활짝 펼쳐져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놈은 욕설이 커지면 커질수록 빨라졌다. 만약 저 놈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희들 원대로 1등을 하면 쉬게 해 줘. 맛없는 사료 주지 마,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까, 채찍질 하지 마.
경주마의 일생은 대물림된다. 부마였던 ‘페가수스 브리지’도, 모마였던 ‘의무의 부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 정도 혈통이면 원래는 씨수말로 쓰는 게 맞는데 말이지.”
기왕이면 제발 이겨라. 나도 원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바텀, 너는 탑이다. 그리고 너는 챔피언이다. 나 대신 이겨줘. 드디어 놈이 자기 마지막 힘을 짜내었다. 아, 1등이구나.
제법 높으신 분(아마 장관이었을 것이다)이 창천만리의 목에 화환을 걸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데, 나는 그 모습에 이상하게 눈물이 치밀었다. 옆자리 패배자들이 환호했다. 나도 덩달아 환호했다. 여하튼 저 놈은 이겼어. 이겼다고. 퀴퀴한 마굴에 요들송이 울려 퍼지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놈은 명실상부한 거세마들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나의 영웅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나는 소위 말하는 마쟁이가 되어, 매일 경마를 마음에 두고 살았다. 놈은 나를 집 밖으로 이끌고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오른 예전의 희망과는 달랐다. 아침부터 일급제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이면 그 돈으로 미술학원에 다녔다.
창천만리 덕분에 직간접적으로 지갑이 두꺼워졌다. 무조건 단승식만 찍어도 이겨버리니 그 점도 매우 고마웠다. 외할머니에게 고기를 사주었다. 정말로 기뻤다. 내가 병신 약자에, 머리 나쁜 놈, 노력이 부족한 놈이라고 잠시나마 자학하지 않았다.
그 사고 전까지는 말이다.
첫 만남 때처럼 다시 대형 더비가 있는 날이었다. 아마 9경주, 마사회장배 경주였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내게 승리를 보여다오.
“저 새끼, 괜찮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옆자리 아저씨가 팔짱을 끼며 구매권을 마킹했다가 버렸다가를 반복했다. 10년 넘게 경마장에 다니면서 익힌 감이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기우였던 것처럼, 며칠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창천만리는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나는 펜스 앞에서 놈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치 대답처럼, 놈은 푸르르, 하고 콧김을 뿜었다.
- 제 9경주, 마사회장배 대회, 경주마들이 경주로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기, 시작합니다.
총성이 울렸다. 놈은 뛰쳐나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몇 걸음 가다 말고 주춤거리다가 나중에는 아예 걷고 만다. 스크린에 비친 창천만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눈으로 자기 상태를 볼 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욕을 했다. 야, 이… 씨발놈아! 경마장이 터져라 흥분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기수는 당황해서 마구 채찍질을 했고… 놈은 간신히 몇 걸음 발을 떼었고… 다시 채찍이 거칠어지고… 놈은…
놈은 뛰다 말고 옆으로 비틀거리더니- 펜스에 대가리를 처박으며 쓰러져버렸다. 뭐야! 나는 벌떡 일어나 경주로를 바라보았다. 왼쪽 앞다리가 덜렁거렸다. 다리가 부러져 나뒹굴었다. 방금 전까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던 모습이 갑자기 매우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창천만리의 울음소리가 경마장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 수천 명의 고함 소리가 작게 느껴질 정도로, 창천만리는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호랑이의 추상같은 울음소리를 들으면 몸이 얼어붙는다 했던가. 그 때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놈은 고통스러워하며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나는 숨이 거칠어졌다. 경마에는 ‘부담중량’이라는 룰이 있는데, 경마의 도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준마(駿馬)에게 핸디캡 중량을 부과하는 것이다. 알고보니 창천만리는 무려 69kg의 부담중량을 지고 뛰고 있었다. 본 게임에서 69kg면, 평소 훈련 할 때는 오죽했을까. 그러다보니 더는 다리가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명마’란 명예를 얻기 위해 평생을 뛴 창천만리는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살려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저 놈도 끝났구먼.”
“뭐라고요?”
“끝났다고.”
“다리 고치면 되잖아요.”
“한번 주행정지 처분을 먹으면, 다시는 경주로에 오르지 못해.”
나는 마권 용지를 쥐고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손가락에서 터져나온 통증이 벼락처럼 가슴과 머리까지 몰아쳤다. 간신히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노숙자 같은 마쟁이에게 물었다.
“다리가 부러진 경주마는 어떻게 됩니까?”
“안락사 시켜. 앞으로 네 시간 안에 저 놈은 죽어.”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저 놈이 자지가 달려있었다면 씨앗이라도 팔겠지만, 거세마는 안 돼. 저 놈 죽을 거야.”
“평생을 뛰었는데 돌아오는 게 고작 그따위 거란 말입니까?”
“유지비가 엄청나잖아.”
“다리를 자르면 살 수 있잖아요.”
“그건 이미 말이 아니지. 말은 잘 때도 서서 자는 동물이야.”
그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스크린 속 나의 영웅은 눈을 끔벅거리며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무 요원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새끼를 잡듯 갈기를 거칠게 잡았다. 창천만리는 다시 울부짖었다. 그리고, 나는 뛰쳐나왔다.
역 앞은 계절을 닮아 끓는 물처럼 이리저리 요란하였다. 인파의 발걸음 소리와 통기타 소리가 뒤엉켜 나름의 박자를 이루는 듯도 했다. 노련한 재즈 악단처럼 두 소리는 서로를 압도하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며 뒤엉켰다.
손가락이 아파.
뒤엉킨다…….뒤엉킨다……. 구석진 골목에서 남녀가 끌어안는 모습이 보였다. 팔과 팔이 농염하게 닿는다. 그 꼬락서니를 보는 내 눈은 아마 초점이 흐릿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아랫도리가 어쩐지 팽팽해진 듯 했다. 그녀의 젖가슴이 물렁거렸다.
성욕과 소외감이 뒤섞인 불결한 전율을 느꼈다. 홀로 제 팔끼리 팔짱낀 내 팔은 너무나 앙상하고 시리고 힘이 없다. 춥다. 음탕한 물 속에 녹아 가라앉고 싶었다. 놈의 죽음을 옛 일로 만들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지. 으슥한 골목에 들어서자 뚜쟁이들이 하나 둘 와서 고개를 굽실거렸다.
- 삼촌, 쉬다 가세요.
- 긴 밤. 이쁜 년으로요.
네가 못한 것, 태어나자마자 남근을 잘려 시도조차 못한 것. 나는 말없이, 표정 없이 20만원을 디밀었다. 거세마가 준 선물이었다. 잠시 후, 거리에서 마주치면 한번 돌아볼만한 예쁜 아가씨가 홍등 사이로 나타났다. 예쁘네. 고맙습니다, 손님. 그녀는 입에 발린 소린줄 알면서도 히죽거렸다. 아무래도 내 또래로 보였다. 나는 그녀가 옷을 벗기도 전에 와락 안아버렸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포효와 함께 더욱 세게 안았다. 기묘한 감정이 물풍선에 구멍나듯 터져나왔다. 나는, 나는, 너처럼 죽지 않을 거고, 죽지 않았고…
대답 대신 그녀의 혀를 빨았다. 네가 못한 것, 네가 못한 것, 하고 싶어서 몸부림쳤을, 그것.
나는 매춘부의 옷을 거칠게 벗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녀가 조심스럽게 가리는 아랫배에 금이 하나 있었다. 임신선으로 보였다. 나는 그걸 보고 정말로 놀라버렸다. 너, 설마. 배덕(背德)감과 죄책감이 물감처럼 심장부터 혈액에 번져나갔다. 저절로 입에서 어, 어… 하고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거 뭐야.”
“이런 일 하다 보면…”
매춘부는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배시시 웃었다. 나는 살아있다… 울리던 포효가 뱃속에서 죽어버렸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추스르고 도망치듯 홍등 밖으로 내달렸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부끄러운 감정이 되살아났다. 씨팔, 씨이팔. 깊은 지하 계단을 기수 없는 거세마처럼 뛰어올라갔다. 립스틱 빛깔 네온사인이 여기저기 원령처럼 번쩍거렸다.
너는 뱃속을 잘리고 물어뜯기고,
결국 여기까지 표류해왔단 거지…?
환지통으로 발작하며 창녀촌 한 가운데서 쭈그려 울었다. 고통은 의외로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남이 겪은 고통이 내가 겪은 고통보다 커 보일때, 우리는 말문을 잃는다. '쟤가 겪은 일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잘린 건 별 것도 아냐' 하고 인정하는 게 겁이 났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허망함과, 공허감,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나는 비틀거렸다. 그런데 매춘굴 밖에는 그런 새끼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다들 어딘가 넋 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그 모습들을 한참 바라보다 뭔가 느낀 게 있어서 거리로 나가 쪽팔림 없이 해장국을 사먹었다. 매춘굴 앞이야말로 진짜 만민평등의 광장 아닌가 싶었다. 다 같은 패배자 새끼, 병신 새끼들이라서.
아스피린을 한 주먹 입에 털어넣었다. 아니, 아달린인가. 환지통이 서서히 가라앉고 졸음이 몰려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서 저번에 만난 페가수스가 다시 눈에 띄었다. 거세마주제에 아직도 하늘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나는 배터리가 다 떨어져가는 휴대폰을 꺼내 자주 듣던 음악을 재생했다. 수천 번도 넘게 들은 노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처음 듣는 노래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긴 전주가 끝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드디어 울부짖었다.
날아보자, 날아보자, 날아보자. 찢어진 나의 날개로.
난 알고 있었어요, 진실을, 모든 건 추락하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