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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신사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일들을 말했고 일곱 살의 나이에 나는 당주가 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두 분 모두 내가 채 한 살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시어 희미한 기억이나마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 있는 무당 집안의 마지막 자손. 오직 출신만으로도 나는 신도들에 의해 극진히 모셔졌다. 아마 자기 자식들한테도 그 정도의 정성은 쏟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평범해 보이고 조용한 나에게 당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나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된 상태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그저 살아있기에 살아갈 뿐이었으니까.
그들의 관심이 사라져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또래보다 조숙한 나는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금방 배웠으니까. 어차피 그들의 보살핌이 없어도 나는 이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사 앞뜰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리가 붕괴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끔찍한 광경에 깜짝 놀라 나와 가장 잘 어울려주던 영감을 찾아가 울면서 내가 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악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신도는 심각하게 듣더니 나에게 몇 가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물어보고는 신도들을 소집, 사회에서의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내가 보았던 바로 그 다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 영감이 나를 처음부터 그렇게 믿어줬을까. 훗날 영감에게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것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전혀 답이 안 되는 대답이었다. 그 자리에서 듣자마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가문의 특수성과 더불어 그 영감의 이상한 신념이 합해지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오른다.
종교단체 그것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들이 갑작스레 다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운행을 통제하는 신도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하는 사람,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찍어대는 사람 등등 더 많은 사람들이 본원에 위치한 TV 중개화면을 통해 보였다.
완고하게 막는 그들의 기세에 사람들은 잠시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나는 거 아니냐며 망설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의 항의는 더욱 거세져갔고 신도들의 기세도 한풀 꺾여 사람들이 통제를 뚫고 다리를 막 건너기 시작할 때였다.
한차례의 큰 울림이 들렸다. 갑작스런 소리는 사람들과 신도들의 행동을 멈추게 하였고 그것이 사람들을 살렸다.
굉음과 함께 다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밑을 든든히 떠받쳐 주어야할 다리가 자욱한 먼지와 함께 물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는 과정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고 그것은 현장에 있던 신도들과 그것은 본원에서 중개화면을 보고 있던 나와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망자 400명. 부상자까지 합치면 약 1000명이 넘었을 거라는 대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한 정체불명의 종교 단체는 누구인가 같은 비슷한 뉘앙스의 헤드라인이 인터넷과 뉴스를 도배했다. 신사는 순식간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핫스팟이 되었다.
나를 믿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넘쳐나 -대부분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다- 신도들을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나는 그들을 거부하고 방송사의 인터뷰 또한 거절했다. 이유가 있었다면 조용한 것이 좋은 내 자신의 성격과 그래, 일종의 책임회피였을 것이다.
나는 그 시절부터 겁쟁이에 불과했다.
나의 결정에 반대하는 신도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나를 존중해주었다. 그 중심에는 맨 처음 내 말을 들어준, 나 같은 가짜가 아닌 실제로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낸 진짜 영웅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나는 일곱 살의 나이에 정식으로 하늘나비-天蝴- 신사의 무녀이자 당주가 되었다.
◇
“나의 어머니도 나와 같은 능력이 있었느냐.”
나는 비록 무책임한 겁쟁이였지만 뻔히 보이는 참사 속에서 죽어갈 사람들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서 그들을 살리는 것에서 나는 아마 일종의 자기위로 같은 것을 느꼈겠지.
나의 지시에 따라 신도들이 영감을 축으로 은밀하게 일을 했기에 처음 이목이 집중 되었던 이후로 우리가 여전히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혹은 있어도 심증만 있어 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퍼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식고 신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어 이윽고는 다시 원래의 한산함을 찾게 되었다.
딱히 내가 하는 일들이 타인에게 알려져 사람들이 나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런 것은 관심 없었다. 그저 나는 이런 적막함이 좋았다.
신사 마루에 걸터앉아 신사 근처 텃밭에서 나오는 감자를 먹고 있던 날이었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며 마루에 닿은 엉덩이를 통해 느껴지는 서늘한 목재의 기분 좋은 감촉에 문득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영감을 찾아가 어머니에 대해 물어보았다.
“천호의 당주는 대대로 그런 능력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주님만큼 재능이 강하게 발현된 적은 유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단 말이느냐.”
“예. 헌데 그것은 갑자기 왜?”
“그저...... 그래 우리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느냐.”
뜻밖의 질문이었을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지만 잠깐 놀란 표정을 짓고는 얼굴의 주름이 깊게 파이는 웃음을 지었다. 보지 못했지만 아마 자식을 보는 부모의 미소가 저런 것이겠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십니까?”
“별로...... 조금 궁금하기는 하구나.”
“그럼 잠시 자리를.”
“어디 가는 것이느냐”
“당주님이 만족할만한 이야기는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감이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한동안 신사 밖을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 떠올라 -원래 신사 밖을 자주 나가지는 않았지만- 잠깐 망설였다가 지금에 와서는 관심이 많이 식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느냐?”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알겠느니라.”
내민 손을 살며시 잡았다.
불과 1년 전 마지막으로 잡았을 때보다 더 거칠어진 것이 느껴져 따뜻하게 전해져오는 손의 감촉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금방이라 하지 않았느냐.”
“예 그랬습니다.”
“멀잖느냐...”
벌써 삼십분은 넘게 걸은 것 같다.
영감이 나를 데리고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람들이 있는 장소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혹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잠시라도 걱정해서 망설였던 게 우스워졌다.
어렸을 적부터 신사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녀 본 덕에 신사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모르는, 왜 있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신사의 뒤편에 있는 숲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 사실 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 길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탓인지 풀이 주변보다 조금 키가 작은 것을 제외하면 주변과 완벽히 동화되어있었다.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아서 딱히 신도에게 이유를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처음에 영감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 때는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으나 입구부터 보이는 무성한 녹음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나는 영감의 손을 잡은 것을 후회했다.
“그것은 제 걸음기준으로 드린 말씀이지 당주님의 걸음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지는 않았잖습니까?”
“말은 잘하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업혀 계시지 않습니까?”
“알겠느니라. 잠자코 있을 테니 그만하거라...”
졌다고 말하는 내 말에 영감은 껄껄껄, 너털웃음을 지었다.
“당주님도 많이 변하셨습니다.”
“뭐가 말이느냐. 또 놀리려는 것이거든 듣지 않겠느니라.”
“껄껄껄. 아닙니다. 정말 많이 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좀 더 가라앉은 분위기셨는데 말입니다.”
“내가 밝아졌단 말이느냐?”
“그보다는 좀 더... 의젓해지신 것 같습니다.”
아, 그런 얘기였었나.
“나는 무책임하게 뒤에 숨어버린 겁쟁이에 불과한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뭔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구나.”
“당주님은 지금 삶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현재 내 삶의 만족도를 묻는 것이느냐? 그렇다면 나름 만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거면 됐습니다. 당주님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단정 짓는 그 말에는 여지까지의 말들과는 다른,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연륜 있는 경험자만이 낼 수 있는 힘이 실려 있었다.
말을 하려다가 살짝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에 놀라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정말 당주님이 그들을 구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뒤에 숨어버린 겁쟁이에 불과하다면 당주님이 지금의 삶에 만족하실 리가 없습니다.”
“나는...”
영감이 걸음을 멈춰 뒤에 업혀있는 나를 돌아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당주님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정말 싫으십니까? 그 일을 하기 싫으십니까?”
“...아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그래, 좋구나.”
미래가 보인다. 사람들이 죽게 되는 일련의 사건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을 구할 책임이 있다. 딱히 나의 이런 운명에 불만을 품었던 적은 없다. 그렇다면 아예 사람들을 구하지도 않고 내팽겼겠지. 오히려 내가 봤던 장면의 미래에서 삶이 마무리 지어졌을 그들이 나로 인해 살아가며 가족, 친구, 애인 혹은 그 무언가를 보며 자신이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설레며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그렇지만...
“...하지만, 내가 책임을 회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않느냐.”
“당주님은 책임을 회피하신 게 아닙니다. 아직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안 되신 겁니다.”
“...”
“분명 둘 다 당주님 말씀처럼 무책임한 것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어 잠시 미루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감이 예의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저는 당주님이 준비가 다 되시면 누구보다 훌륭하게 그 책임을 지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가.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었나.
영감에 조언에 나 스스로를 비난하던 마음과 깊은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불안이 조금씩 옅어져 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처음 느껴보는 편안한 안도감에 이질감을 느껴 더 이상 영감을 마주보지 못하고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영감 또한 그걸로 됐는지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파묻은 얼굴이 조금 덥게 느껴질 때쯤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저기.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이느냐.”
“괜찮습니다. 당주님은 본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강하신 분이니까요.”
“그렇느냐.”
“그나저나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 건 내적인 것뿐만이 아니군요. 몇 년 전보다 제법 무거워지셨습니다.”
“읏. 키, 키가 컸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보니까 키는 별로 차이가...”
“이익. 시끄럽구나. 조용하거라!”
“아. 아. 알겠습니다. 발버둥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렇게 움직이시면 힘듭니다...”
“후후. 살은 내가 아니라 그대가 찐듯하구나. 몸 관리 잘 하거라.”
“알겠으니 그만 움직여 주시지요...”
버둥거리는 것을 멈추고 한 번 더 비웃은 후에 다시금 얼굴을 파묻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러지 않느냐.”
“주의하겠습니다. 역시 몸이 무거워 지신만큼 힘도 세지신건지... 아아! 잘못했습니다! 더 이상은 힘이... 그만...!”
“흥.”
진땀을 흘리는 것을 불쌍히 여겨 가만히 있자 영감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당할 거면서 왜 먼저 놀리는지...
“...고맙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영감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에 기분 좋게 그 넓은 등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게 역시 몸무게가...”
“아 쫌!”
“호오. 그 뒷길이 이런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구나.”
삼십분을 넘게 숲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작은 절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가 오래전인 듯 절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스스로의 멋과 더불어 보기 좋은 장관을 연출했다.
“헌데 사람이 사는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이런 곳엔 왜... 아직도 많이 힘들더냐.”
먼저 앞쪽을 들러보며 가볍게 걸어 봤는데 영감이 보이질 않아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 근처 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는 영감이 있었다.
“조금, 흐... 힘들군요, 정말. 하...”
“자업자득 아니더냐.”
“예 뭐... 정말 말조심 해야겠습니다. 허윽.”
조금은 너무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어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고 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게 아예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꼼꼼하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기는 하는 듯, 듬성듬성 정리가 된 흔적이 보였고 특히 내부로 이어지는 마루는 늘 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숲속. 그것도 신사 뒤편의 길이 아니면 찾아오기 힘든 이런 곳에 왜 절이 있는 걸까.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어디 가십니까.”
“흥미가 생겼느니라. 너는... 그래, 힘들면 거기서 좀 더 쉬는 게 어떻겠느냐.”
영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호흡은 안정된 듯 보였지만 아직도 나무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조금 심했던 것 같긴 하다. 신사로 돌아가면 감자를 줘야지.
끼익
조심스럽게 신을 벗고 맨발로 마루를 딛자 서늘한 감촉과 함께 오래된 나무 특유의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났다. 언제나 이럴 때면 느끼는 거지만 나는 맨살에 닿을 때 느껴지는 목재의 차가운 감촉이 좋다. 그렇게 잠시 발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냉기의 기분 좋은 쾌감을 즐겼다.
멀리서 봤던 대로 이곳저곳 제대로 청소하지 않아서 지저분한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 밟고 있는, 안쪽으로 이어지는 이 길 만큼은 깨끗했다.
그러고 보면 이 부분만 청소를 잘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주 들락거려서 청소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싶다.
“안에 누구 있느냐.”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미닫이 문 앞에 서서 사람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정도면 예의는 차린 거겠지.
“들어가겠느니라.”
드르르륵
겉보기와는 다르게 손질이 잘 되어 있었던 것일까. 힘들일 필요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에 조금 놀라며 안으로 들어섰다.
“...”
조금은 더운 초여름의 날씨임에도 내부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전이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실내는 주변에 우거진 나무와 작게 나있는 창문으로 인해 들어오는 빛이 적어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빛이 아예 없지는 않아 곧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실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인위적이지 않다고 해야 할까 삭막하다고 해야 할까.
암적응을 끝낸 눈으로 본 옅은 어둠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걸까?
조금 의심이 생길 무렵 가장 안쪽에 있는 어떤 물체를 발견했다.
“방석?”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가 쭈그려 앉아 확인해 본 그것은 방석이었다. 겉모습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으나 솜이 많이 들어가 있어 폭신해 보이는 그것은 겉모습보다 실용성을 추구한 듯 보였다. 가구하나 존재하지 않는 살풍경한 주위와 대비되는 작은 방석 하나. 그것이 점점 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음?”
고개를 돌리다 뭔가가 시야에 걸려서 보았더니 방석에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다. 적은 양의 빛을 반사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그것을 집었을 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실?”
하나는 손으로 집은 것이 은색의 가는 실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집을 때 손에 닿은 방석에 온기가 남아있었다는 것.
드르르륵 탁
“히익.”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빛이 줄어든 실내는 어둠이 한층 더 짙어져 시야가 다시금 좁아졌다.
그러고 보니 문을 닫지 않았던가.
이어지는 정적. 눈은 다시금 어둠에 적응을 끝내 시야는 돌아왔으나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 여여여 영감이느냐. 쉬, 쉰다더니 이제 다 쉰 것이느냐”
떨리는 목소리로 영감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감을 담아 던진 질문에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발소리. 걸음에 맞춰 조그맣게 삐걱거리는 나무소리에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던가? 아니. 이것은 단순히 내가 겁이 많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압도적인 무력에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몸의 떨림은 더 심해지고 식은땀에 옷은 젖어갔다.
미쳐 버릴 것 같은 공포에 사고는 마비되어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만을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