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ucnovel.com/hbcha90/story/103756?BB_CATE=&back=&smode=&squery=&p=1

(UC노벨 버전. 완전 초고판.)

어쩌면 이것이 지금 연재하고 있는 <무장강습대 와일드캣>의 원형일지도 모릅니다. 

트레이너에게 핍박받던 포켓몬들이 봉기하는 내용입니다. 

지우는 포켓몬의 기술까지 사용할 수 있는 190cm 90kg 마초남으로 나옵니다.

악당 오박사는 극이 시작되자마자 지우에게 당합니다.

바람이는 지우에게 흠씬 두들겨맞습니다.

(여기까지 봐도 알겠지만 개그소설입니다.)

1화 분량만 남아있습니다. 나머지는 관리 소홀로 없어졌습니다.

이후 얘기는... 상록숲에 도착한 지우가 동네 트레이너들을 모조리 때리고 포켓몬을 압수합니다.

그리고 로켓단의 보스 '비주기'와 마주합니다. 

알고봤더니 비주기는 지우 아빠네 친구였고, 로켓단은 포켓몬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레지스탕스 조직이었다는 것. 

지우는 비주기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온 세상의 트레이너들을 때려눕힐 계획을 세웁니다.

로사 로이는 지우 꼬붕으로 나옵니다.

지우 일행이 검은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는 장면에서 3화가 끝납니다.

디씨 힛갤 갈 뻔 했습니다. 차라리 이걸 마음 제대로 먹고 연재해볼걸.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글 솜씨가 크게 늘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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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래서’란 말을 할 정도로 간단한게 아니래도.”

 오박사는 말을 잇다 지쳤는지 켁켁거렸다. 왼손으로 연구소 한 켠의 주전자를 가리키며, 눈으로는 연신 건네달란 시늉을 했다. 하지만 원하는 반응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마주하고 있는 청년의 인상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몬스터볼이 그려진 야구모자에 가려진 깊게 패인 눈이 몹시 사나워보였다. 양 어깨엔 각각 ‘rainbow’와 ‘energy’라고 굵게 파인 문신이 있고, 바지는 하트 문양과 쇠고리로 치장되어 있었다. 이 새끼, 뭐하는 놈이야. 오박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청년은 모자를 좀 더 꺾어 눌러쓰고 말을 되받았다.

  “정리하자면, 야생 포켓몬을 공격해서 빈사 상태로 만들고 플라스틱 공 안에 감금시키며 이따금 살인 기술을 가르치라, 이것인가.”

 “그렇지, 어휘 사용이 좀 거칠긴 했지만 요점은 바로 그거야. 그걸 반복하면서 150종만 모으면 된다고.”

 오박사는 촐싹대는 표정을 하며 두 손을 파리처럼 삭삭 비볐다. 청년은 이래저래 기분이 불편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일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일종의 납치 공모, 그 굴레 안으로 은근슬쩍 끌어당겨진 것이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청년이 이 모험을 가장한 동물 폭력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마을에 붙여진 50년대 풍 포스터 때문이었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캐치프라이즈는 ‘정부 지원금’과 ‘야생 동물과의 교감’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 조그맣게 ‘공공 이익을 위한 동물 수집’이란 글귀가 있었음은 청년이 간과한 사실이었다. 벼룩만큼 작아 누구나 스쳐 지나가는 게 당연할만한 글씨였다.

 “150종을 생포했다 치자고. 그 포켓몬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청년은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오박사는 그저 낄낄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기만 하다가 말했다.

 “이봐요, 아직 젊은 사람들이 몰라도 되는 게 있는 거여요. 21세기의 메카니즘은 다 그런거에요. 지우씨는 그냥 자기 바운더리를 지키면서 일하기만 하면 된다고. 이미 지원서 냈고, 또 월급 앞당겨 받았으니까 일은 해야지.”

 그 말에 청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나저나 이봐요. 자네와 난 40살 이상 연배가 차이나지 않아? 파릇파릇한 스무살 지우씨가 그렇게 반말 쓰니까 듣기 안좋다아. 응?”

 “난 내가 인정한 어른에게만 존댓말을 쓴다. 훈계는 집어치워.”

 오박사는 190cm에 달하는 이 거구의 청년이 인상을 슬쩍 구기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눌렸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오박사는 억지로 코웃음치며 성냥을 한 갑 던져줬다.

 그는 뒤돌아선 김에 선반 위에서 몬스터볼 하나를 골라내었다. 그 플라스틱 공에는 ‘피카츄’란 이름이 유성 매직으로 갈겨쓰여있었다. 오박사는 몬스터볼을 지우에게 넘겼다.

 “이 놈은 워낙 유명한 놈이라 설명하는 것도 입이 아깝지. 피카츄란 놈인데...”

 오박사는 머리에서 떠오른 단어를 문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힘들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젠장! 역시 늙으면 머리가 안 돌아간단 말이야.

 “...아주 성질이 더럽고... 질투심이 강한 놈이야. TV쇼에서 이 놈들이 전기 만드는 거 봤지? 미니카 막 굴러가고... 그러잖아.”

 그는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여하튼... 그렇게 유명한 놈이고, 전력 생산량도 무시 못해. 여행중에 근처 발전소에 팔아버리면 떡볶이 사먹고 버스 카드 충전하고 맥콜 한 캔 사먹을 수 있을걸.”

 오박사는 방금 자신이 무척 재밌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과장되게 큭큭 웃었다. 지우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백 마리만 발전소에 넣어도 도시 하나가 운영되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냔 말이지. 사과를 주고 전기를 얻어내는 건 엄청난 일이라고. 인류의 축복아니겠어.

 “다시 한번 묻겠다. 내가 만약 포켓몬 마스터가 돼서 150종을 다루게 되면,..”

 “그 150종이 어디에 쓰이겠나? 공공 이익 증진을 위해 생체 실험에 쓰일거야.”

 “뭐라고?”

 지우는 눈에 힘을 주고 오박사를 노려보았다. 미동도 없던 전신에서 눈빛만이 살기를 띄었다. 오박사도 그것을 느꼈지만, 지우가 이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왠지 신이 나는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지우씨는 이 산업 전선의 최일선에 선 사람이라고. 최고급 상품을 납품하는 게 업적 도리요 공공의 이득이란 말이지. 질이 낮으면 학교 급식에나 나오니까 그 점 주의하라고? 아님 가죽 세공업자한테 넘어갈 수도 있겠지.”

 “나는 이따위 일 기대하고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고 지원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이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내가 기대한 일은 그저 현장 관리직이지 노예 수집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더럽군.”

 “보쇼, 지우씨. 세상의 포켓몬 트레이너는 한 둘이 아니거든. 무진장 많다고. 지우씨도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찌되든 조금씩 포켓몬들의 노동력을 먹고 자랐단 말야. 이제 와서 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건 위선 아냐?”

 “당신은 포켓몬의 권위자가 아닌가. 연구자란 인간이, 포켓몬의 권리와 생명이 대수롭지 않다 이건가?”

 그 말을 들은 오박사는 의자를 지익 끌고 지우의 바로 눈 앞에까지 가서 눈을 맞추었다.

 “어이, 지우씨. 그냥 여기서 조용히 나가서 일하면... 지우씨가 맹수 조련의 마스터가 되면... 국가에서 국회의원 급으로 대우해줄거라고! 마음대로 여자도 얻을 수 있고, 사람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텐데, 젊은 사람이 이렇게 거르는 이유가 많아? 말 길게 하지 말고 나가. 귀찮으니까.”

 지우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왼손으로 모자를 고쳐썼다. 그의 팔뚝에 있는 두 문신이 붉게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 지우, 소위 일컬어지는 문제아다. 학교에선 싸움을 멀다하고 했고 심지어 교사를 폭행한 적도 있었지. 그 결과가 지금 스무살인데도 초등학생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러나... 이런 더러운 나 조차도 무엇인가가 악인지는 안다! 신문에 칼럼도 올린다는 지식인 새끼가 이 모양이라니 토악질이 난다.”

 “아니, 이 사람이...”

 “너는 악이다, 악의 첨병이다!”

 포효 같은 외침이 끝나는 순간, 지우는 오른손에 온 몸의 체중을 실어 오박사의 왼쪽 턱을 후려갈겼다. 우둑하는 소리가 연구소를 울렸다. 딱딱한 뼈의 감촉이 살을 찢고 지우에게 그대로 전해져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오박사는 아얏 소리조차 내질 못했다. 오박사는 2M 정도 날아가 서류 더미에 쳐박혔다.

 “일어나.”

 “이게 무슨...”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지우의 구둣발이 오박사의 얼굴로 날아왔다. 오박사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턱 끝에 구둣발이 간신히 스치는 정도로 피해를 줄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턱이 찢어질 정도로 지우의 발차기는 날렵하고 강했다. 오박사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대로 쉼 없이 허둥지둥 기어가 피카츄가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땅에 박듯이 던졌다. 그러자, 삐잉, 하는 소리와 함께 피카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피카.”

 그것은 배고픔과 고독으로 내장이 부패한 듯 한 목소리의 피카츄였다. 털은 종 특유의 윤기를 잃었고 귀는 땅을 내려다보며 접혔다. 오직 뺨만이 야수의 자존심을 살리겠다는 듯이  유독 붉었다.

 “피... 피카츄! 나는 너의 주인인 오박사다. 당장 저 놈을 전기로 지져버려!”

 충혈된 눈의 피카츄는 잠시동안 멍하니 있었다. 세상 빛을 본지도 오래된 까닭이었다. 모자를 쓴 거구의 남자와, 지난 3년간 인정사정 없던 자신의 주인이 눈 앞에 있었다. 피카츄는 멍하니 상황을 분석했고- 몇 초 뒤 주저없이 지우에게 달려가 엎드려 배를 보였다. 새로운 주종관계의 시작이었다. 둘은 빠르게 시선을 나누었다.

 “네가 피카츄냐.”

 “피카, 핏, 핏, 피카츄.”

 피카츄의 목소리는 전투 베테랑답게 날이 서려있었다. 자유를 위해 총칼을 든 자유주의 전사의 목소리... 지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좋다. 내 머리에 올라타라.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겠다.”

 오박사는 피카츄의 배신에 엄청난 분노와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괴성을 지르며 쇠파이프를 들고 곧장 지우에게 돌격해왔다. 이성을 잃어 포효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당대 최고 지식인의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모습이었다. 분노로 동공이 풀어져있었고 입가에선 침이 줄줄 흘렀다. 지우는 온 몸의 기운을 다리로 모았다. 어깨에 있는 두 개의 문신, ‘레인보우’와 ‘에너지’가 붉은 빛을 내며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고, 머리에 있는 피카츄도 자신의 전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십만 볼트의 전압을 이끌어냈다.

 “자기력이다, 저 쇠파이프를 봉쇄해라, 피카츄!”

 피카츄는 뺨에서 강한 자기력을 뿜어내어 쇠파이프를 컨트롤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우가 날렵하게 2M가 넘는 서전트 점프를 한 것은 그와 동시였다. 오박사는 으! 아!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봐두도록 해라 피카츄! 레인보우 에너지 다이너마이트 킥이다!”

 지우의 온 힘을 담은 레인보우 에너지 다이너마이트 킥의 파괴력과 피카츄의 십만 볼트 전력은,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 해 기단이 하나로 합쳐져 태풍을 형성하듯, 오박사의 머리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오박사의 머리는 머리가 달려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목이 거의 한 바퀴를 돌아 지우를 비스듬히 바라볼 정도였다. 그리고 전력으로 인한 쇼크로 인해 오박사는 마른 오징어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오므라들 듯 바들거렸다.

 “...이하 R.E.D 킥이라고 하지.”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은 이 순식간에 일어난 참사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모조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피카츄. 나는 네 고향, 상록숲에 가겠다. 거기서 노예 포켓몬들을 모아 봉기하자, 만국의 포켓몬 프롤레타리아의 시대가 왔음을, 이 날, 여기서 다짐하겠다.”

 지우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피카츄는 흐르는 눈물이 뺨의 전력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우는 모양새였다.

 연구실 서재에 쳐박혀 있는 오박사는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박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미약하게 자신의 의식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었다. 젊은 시절 열심히 권투와 레슬링을 배워 맷집이 꽤나 좋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기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개자식들! 죽여버리겠다. 감히 포켓몬의 권위자인 이 오박사를 쥐어 패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하지만 저 녀석들은 경찰에 잡히지 않은 것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이 나라의 경찰들은 저 범법자들을 놓치고 말 것이다. 10대 불량 청소년이 배짱 좋게 경찰차 앞에서 자판기를 부수고 콜라를 훔쳐갔는데도 쫒아가지 않고 저희들끼리 도넛이나 먹었던 놈들이 이 나라의 경찰들 아닌가! 이 나라의 치안은 차마 치안이라 부를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다. 오박사는 어제 본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저 자식들을 단죄할 수 있는 건 지금 뿐이다. 내 회심의 역작, 대(對) 인간용 몬스터볼을 쓸 데가 왔다. 그것은 원래 군대에 납품하려 했던 것이지만, 너무 잔인해서 쓸 수 없다고 국방부에서 거부했던 물건이었다. 오박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슬금슬금 기어서 연구실 한 쪽의 캐비넷으로 갔다. 지우와 피카츄는 이제 막 연구실을 나가려는 참이었다. 기회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이걸 꺼내서 던지기만 하면 된다. 오박사는 긴장과 흥분으로 손이 마구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오박사는 캐비넷을 열고 대 인간용 몬스터볼을 손에 쥐었다. 자, 던진다. 오박사는 심호흡을 하고 몬스터볼을 던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지우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젠장할! 오박사는 재빠르게 그 자리에 철푸덕 엎드려 기절한 척을 했다.

 지우는 방금 전까지 서재 더미에 처박혀 있던 오박사가 앞으로 엎드려 있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박사가 엎드린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오박사는 오른손에 쥔 몬스터볼을 들키지 않을까 심장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박사에게 있어 기회이기도 했다. 가까이 왔을 때, 녀석의 발등에 이 몬스터볼을 치기만 하면 된다. 한 걸음, 두 걸음... 지우는 점점 오박사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는 어느 정도 걸어오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흥, 눈의 착각인가.”

 지우는 다시 뒤돌아섰다. 바로 이 때다! 오박사는 벌떡 일어나 지우에게 몬스터볼을 던졌다.

 “바보 같은 놈! 내 포켓몬이 되어라!”

 하지만 지우는 이미 오박사가 손에 쥐고 있는 몬스터볼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대인용 병기일 것이라고 추측마저 하고 있었다. 지우는 재빠르게 근처에 있는 30cm 자를 잡아, 야구 선수가 공을 치듯 오박사 쪽으로 튕겨냈다.

 “이런 젠장할!”

 오박사는 몬스터볼에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그리고 섬광이 한번 번쩍이더니, 오박사는 몬스터볼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지우는 멍청한 놈. 하고 한마디 중얼거렸다. 핏 피카. 피카츄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지우는 오박사가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주워 다시 바닥에 휙 하고 던졌다. 다시 섬광이 번쩍 일고 오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박사!”

 오박사는 오랑우탄 같은 자세로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두 팔을 땅에 질질 끌고 멍청한 표정을 하면서.

 “이봐.”

 “오박사! 오박사!”

 대 인간용 몬스터볼은 인간을 몬스터볼에 가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격자를 정말로 포켓몬으로 만드는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물건이었다. 오박사는 지성을 잃고 연신 자신의 이름만 외쳐댔다.

 “오-박사. 오박사사.”

 “이런, 이런...”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누군가가 연구실 쪽으로 전력으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나라의 무능한 경찰은 아닐 테지. 지우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들어맞았다. 출입문을 몸으로 들이받으며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우와 비슷한 연령대의 한 청년이었다.

 “할아버지!”

 그는 오박사를 보며 소리 질렀다. 할아버지라니, 이거 일 사납게 됐군. 지우는 다시 한번 이런, 이런... 하고 중얼거렸다. 청년은 오박사 쪽으로 곧장 뛰어와 오박사의 어깨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며 연신 할아버지, 할아버지!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오박사... 하는 얼빠진 것이었다.

 “이봐. 설명이 필요할 것 같...”

 “너 이 새끼!”

 청년은 주먹을 꽉 쥐고 지우를 향해 곧장 달려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우는 민첩하게 그 주먹을 낚아채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박사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닥쳐!”

 청년은 오른손이 잡힌 상태 그대로 다시 왼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지우는 여유롭게 그 주먹을, 고개를 비트는 것만으로 피하며 남은 손으로 잡았다. 여태껏 살아오며 주먹다짐으론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은 지우였다. 보통 인간의 동체시력을 훨씬 뛰어넘는 그에겐, 청년의 주먹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청년은 두 손이 잡힌 채로 힘을 주어 지우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우는 청년의 손을 털어내듯 떼어냈다. 청년은 씩씩거리더니 방금 전 오박사가 휘두르려 했던 쇠파이프를 들고 지우를 죽일 기세로 휘둘렀다. 하지만 지우의 맞받아치는 주먹에 쇠파이프는 탱! 하고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뒤에선 오박사가 멍청하게 자기 손가락을 빨며 관전하고 있었다.

 “너도 포켓몬 트레이너냐.”

 청년은 자기 손에 쥐어진, 휘어진 쇠파이프를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5분 전부터.”

 “너에게 포켓몬 배틀을 신청한다.”

 “좋다.”

 “내 이름은 오바람, 국가 공인 2급 포켓몬 트레이너다. 불구가 된 내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결투를 시작하겠다.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청년은 권투 선수처럼 빠르게 뒤로 백스텝을 해서 거리를 벌리더니, 허리춤에 찬 몬스터볼 하나를 땅에 던졌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족히 200kg는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몸집에 날개가 달린, 흡사 공룡과 같은 포켓몬이었다. 정체 모를 그 포켓몬은, 청년처럼 사나운 표정을 하고 지우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도 포켓몬 도감이 있으면 확인해보아라. 이 포켓몬이 무엇인지!”

 “난 그런 거 없다.”

 “...149번 포켓몬, 망나뇽이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오오- 하고 거대한 망나뇽이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살면서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피카츄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할 정도였다. 피카츄는 이 거대한 포켓몬을 보며, 이전에 오박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오박사는 언젠가 연구소에서, 이 망나뇽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망나뇽은 포켓몬 전자 도감 측정 기준으로 최소 레벨 55의 포켓몬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자신의 레벨은 45... 열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피카츄는 이 배틀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트레이너의 명령만을 기다릴 뿐.

 그런데 지우의 행동은 피카츄의 생각과는 완전히 의외의 것이었다. 지우는 피카츄 앞에 저벅저벅 걸어가서, 피카츄, 넌 뒤로 빠져 있어라. 하고 말했다. 그리곤 망나뇽을 마주보며 말했다.

 “덤벼라.”  

 “뭐라고?”

 바람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방금 들은 말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는 방금 전부터 포켓몬의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진정한 포켓몬의 동반자라면, 포켓몬 대신 싸울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미친 놈.”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으며 트레이너로서 성장해온 바람이었다. 중학교부터 포켓몬 트레이너 실습을 받으며, 10급부터 한 계단씩 올라 마침내 국가 공인 2급의 자리까지 올랐다. 학교 내내 포켓몬 배틀의 우등생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오박사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줄곧 무패 행진, 상승 가도를 이어온 그였다. 그런 바람에게 지우의 일갈은 미친 소리로 밖에 들리질 않았다.

 “더 말할 것 없다, 망나뇽, 천장을 부수고 날아올라라!”

 망나뇽은 예의 오오오- 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입에서 노란색 광선을 쏘았다.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단 3초 만에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바람은 망나뇽의 등에 타고 올라 5M 정도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곤 지우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이제 어쩔테냐? 포켓몬 없이 이 싸움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포켓몬 대신 싸울 줄도 알아야 진정한 트레이너라고? 웃기지 마라. 링 위에 코치가 들어가 대신 싸우겠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프로레슬링도 안 보고 사는 놈인가 보군.”

 “...하여튼, 죽어라! 망나뇽, 최대 출력의 파괴광선을 쏴라!”

 망나뇽은 크와아, 하고 들숨을 들였다가 와악! 하고 거대한 줄기의 광선을 쏘았다. 그걸 보고 피카츄는 생각했다. 끝났다. 이걸 맞으면 연구소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피카츄는 최후의 발악으로 자신의 필살기를 사용하려고 몸 안의 전력을 모두 끌어 모았다. 피카츄의 필살기는 마른 하늘에도 벼락을 내리칠 수 있는, 통칭 ‘번개’라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지우의 행동은 이번에도 피카츄의 예상과는 한참 빗나간 것이었다.

 “겨우 그거냐.”

 “뭐라고?”
 “네 패인을 미리 알려주지, 천장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지우의 어깨에 있는 두 문신, ‘레인보우’와 ‘에너지’가 다시 붉은 빛으로 타오르듯 빛났다. 어깨에서 생겨난 그 어떤 힘이 생겨나 실체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지우의 두 손 안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피카츄는 생각했다. 설마, 이 기술은...

 “받아라!”

 지우의 두 손 안에 모여진 힘이 망나뇽의 그것과 같이 광선 형태로 뿜어져나왔다. 그리곤  망나뇽의 광선과 부딪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었다. 두 광선의 힘겨루기는 거대하게 구(球)체화했다. 거대한 두 힘의 충돌에 연구소 천장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태양의 힘, 솔라 빔(Solar beam)이다!”

 “이럴 수가!”

 바람은 경악했다. 인간이 포켓몬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실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고가의 기술 머신을 사서 주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 습득 자체가 아니었다. 인간이 포켓몬의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포켓몬의 몇 배나 되는 힘과 체력, 그리고 노력이 필요했다. 유전자상으로 체질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람은 이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올림픽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가 비싼 돈을 들여 10만 볼트 기술 머신을 사서 주사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육체적으로 완성된 인간도 고작 220 볼트를 내뿜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 솔라 빔은 포켓몬의, 아니, 포켓몬의 기술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 광선의 힘겨루기는 점차 바람쪽이 불리해지고 있었다.

 “끝이다.”

 지우가 흡! 하고 광선을 더욱 더 세게 출력하자, 힘겨루기는 끝이 났다. 지우의 솔라 빔이 망나뇽의 파괴광선을 완전히 압도하여, 마침내 바람과 망나뇽은 지우의 솔라 빔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둘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다. 피카츄가 뛰어가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둘은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우가 마지막에 힘을 조절했는지 그리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대단하군... 피카츄는 감탄한 나머지 지우에게 외쳤다.

 “피카! 핏, 핏, 츄츄, 피카츄!”

 “고맙다, 피카츄.”

 지우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대답해주었다.

 “가자. 피카츄. 상록숲으로.”

 “서라!”

 쓰러진 바람이 소리 질렀다.

 “너 이놈, 할아버지를 포켓몬으로 만든 불구대천의 원수... 언젠가 복수하겠다.”

 지우는 모자를 눌러쓰며 대답했다.

 “그래, 좋다. 내 과실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지. 헌데 충고 하나 할까?”

 “닥쳐!”

 “포켓몬 트레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포켓몬 트레이너 본연의 강함이다.”

 바람은 항변하려 했지만, 패배한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 말 못하고 그저 흑, 흑, 하고 눈물을 흘렸다. 최초의 패배였다. 그것도 포켓몬이 아닌 인간에게 진 것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솔라 빔은 어떻게 배운 거지? 기술 머신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가 하나 있었지. 그것이 솔라 빔 기술 머신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오박사가 문제였다.